선사 시대의 인류는 무덤이나 집터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후세에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인간은 의사 전달을 위해 증표나 기호, 문자를 만들었고 이를 점토판, 대나무,목편(木片), 석판, 짐승가죽 등에 표시하여 후세에 전하였다.
바로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편리하게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재료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종이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렇듯 종이는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즉 종이는 우리의 정신적 토양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문화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종이와 유사한 재료로 가장 오래 된 것은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나일강가에서 자라던 파피루스(Papyrus)였다. 그러나 페이퍼(Paper)의 어원이 된 파피루스는 식물성 섬유를 초지(抄紙)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종이라고 규정짓기는 곤란하다. 중국에서는 서기 105년 후한시대 화제(和帝)때 궁중의 물자 조달 책임자였던 채륜(菜倫)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채륜이 제지술을 개량했던 서기 105년 경은 한나라가 한반도에 낙랑군을 비롯한 4군을 설치했던 시기였다.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세력이 정립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남만주 일대까지 확장되었다. 따라서 지역적, 문화적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었음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는 3~4세기 경에 중국의 제지술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